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네 어린 양을 먹여라.(요한복음 21장)-헬라어 사랑하다/알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고기를 잡고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물고기를 잡게 하신 후 같이 아침 식사를 한 뒤에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3번이나 물으시고는 “네 양 떼를 먹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베드로의 이 대화를 헬라어로 살펴 더 깊은 뜻을 알아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썸네일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3번 물으셨습니다.

1.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1.1 요한복음 21장

요한복음 21장에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갈릴리 지방으로 내려와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를 그물로 잡고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밤이 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한 제자들에게 배 오른쪽에 그물을 내리라고 하셔서 물고기 153마리를 잡는 장면이 나옵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7명의 제자들 앞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유화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7명의 제자들 앞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베드로와 6명의 제자들은 밤이 새도록 그물질을 했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날이 밝아오던 새벽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배 오른쪽에 그물을 내리라고 지시하셨고 제자들은 순종하여 그물을 던지니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고기를 잡아 나온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피워놓으신 불가에 앉아 고기를 구워 먹었습니다.

베드로는 부활하셔서 자기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볼 면목이 없었습니다.
주를 위해 죽을지언정 주를 버리지 않겠다고 큰소리쳤건만 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3번 부인한 자신의 약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후회했을 겁니다.

예수님과 제자 7명이 모두 아침을 먹은 후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3번 물으시는 장면이 나오며 그 후 “네 어린양 떼를 먹여라, 내 양 떼를 쳐라, 내 양 떼를 먹여라.”라고 3번 말씀하셨습니다.

신약성경은 그리스어인 헬라어로 기록됐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의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사랑하느냐”와 베드로의 대답 중에서  “사랑합니다.”와 “아십니다”라는 단어를 다르게 사용했습니다.

한국어로는 사랑하다와 알다라는 단어가 각각 한 단어로 쓰였지만 예수님께서 3번의 질문에서 사용하신 사랑하느냐라는 단어와 베드로가 대답하면서 사용한  사랑하다와 아십니다라는 단어는 다른 뜻의 단어가 각각 사용됐습니다.

2.2 헬라어의 4가지 사랑

구분특성비고
자기 사랑스테르고
(명사형 : 스토르게)
στοργή 
-가족 간의 사랑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
-비성적 사랑
 
에라오
(명사형 : 에로스)
Έρως
남녀 간의 정념적이고 감각적인 사랑 
他者 사랑필레오
(명사형 : 필리아)
φῐλία
-친구 간의 사랑,
-우정, 애정, 다정함, 우애
-아가페와 달리 情적인 요소가 있음
아가파오
(명사형 : 아가페)
ἀγάπη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위로부터 내려오는 것, 주는 것
-고전 13장에서의 사랑이 아가페임.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일방적인 사랑을 뜻하는 것은 아님.

자녀는 자신의 생명이 연장되는 것이므로 스토르게는 자기 사랑의 범주에 속하고 필리오와 아가페는 타인에 대한 사랑을 뜻합니다.

2.3 예수님과 베드로의 질문과 대답

구분예수님 말씀베드로 대답
원문원문
예수님질문 1: 사랑하느냐?아가파스메 시몬느 요한네?요한의 아들 시몬아, 아가페 사랑을 하느냐?  
질문 2: 사랑하느냐?  
질문 3: 사랑하느냐?필로메이스 시몬느 요한네?요한의 아들 시몬아, 필리아 사랑을 하느냐?  
베드로대답 1: 사랑하다  아가파스세가 아니고 필로세(φιλω σε(philo se))로 대답베드로는 아가페사랑이라고 대답할 자신이 없어 겸손하게 필로세로 대답함
대답 2: 사랑하다  
대답 3: 사랑하다  3번째도 필로세로 대답
아십니다  오이다-비체험적으로 앎
-이론적으로 앎
아십니다  
아십니다  기노스크-체험적으로 앎
-경험해서 앎

♠(주) 헬라어로 표현한 사랑하다라는 단어로 이 대화를 설명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도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그러나, 저는 헬라어로 표현된 다른 단어의 뜻을 살펴봄으로써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요한복음 21:15-17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2.3.1 사랑하다와 알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다는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듣고 다른 제자들과 함께 무덤으로 달려가 그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간 후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말씀을 나누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자기가 주님을 보았다는 것과 주님께서 자기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전하였습니다. (요 20:1~18)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죽기 전에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 사실을 전하지는 않고 “나는 물고기를 잡으러 가겠소.”라고 말하며 물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요 21:3)

베드로는 부활의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아직 성령이 자신에게 임재하지 못한 상태라 예수님을 부인하던 자신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물고기를 잡고 있던 갈릴리 호숫가에 나타나셨고 이미 동이 틀 무렵이었으나 7명의 제자들은 아무도 그가 예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요 21:4)

예수님께서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라고 물으실 때까지도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몰랐다가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리하면 잡을 것이다.”라는 말을 듣고 그대로 한 뒤에 그물을 들어 올릴 수 없을 정도로 고기를 많이 잡은 후에야 그분이 예수님임을 알고는 베드로는 “저분은 예수님이시다.”라고 말하고는 겉옷을 두르고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요 21:4~8)

고기가 너무 많아 그물을 작은 배에 들어 올리지도 못하고 그물을 끌면서 90m쯤 떨어진 해안으로 나온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미 불을 피워 놓으셨고 불위에는 고기가 올려져 있었으며 빵도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요 21:8~11)

제자 중 아무도 감히 “선생님은 누구십니까?”라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라고 요한은 적었습니다. (요 21:12)

예수님께서는 7명의 제자들에게 물고기와 빵을 직접 건네주셨습니다.(요 21:13)

베드로는 동녘이 밝아오던 새벽이었으나 그가 예수님을 부인하던 날 밤, 불 앞이었다는 (눅22:55)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대제사장집 뜰 불가에서 예수님을 보았고 이제는 갈릴리 호숫가 불가에서 다시 예수님을 보게 된 것입니다. 
죄수로서 심판을 받으시던 예수님과 부활하신 구세주 예수님!
완전히 다른 신분의 예수님이셨습니다.

아침 식사 후에 예수님의 질문을 받은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붙잡히던 날 밤, “주님, 나는 감옥에도 죽는 자리에도 주님과 함께 갈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눅22:33) “내가 선생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을지라도 절대로 선생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막 14:31)라고 했습니다만   예수님을 저주하고 맹세하며 부인한 (막 14:71) 자신의 나약함을 잘 알고 있었기에 부활하신 주님 앞에서 감히 아가페 사랑을 한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절대 부인하지 않겠다고 말할 때  모두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던 (막 14:31)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예수님을 3번 부인한 후에 통곡하는 베드로 그림
예수님을 3번 부인한 후에 통곡하는 베드로

그리고, 베드로는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하면서도 “오이다”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주님께서 제가 약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라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번째 질문에서는 아가페 대신 필레오라는 단어를 사용하셔서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그래, 베드로야 내가 너의 약함을 잘 알고 있다. 너는 나를 사랑할 때 아가페 사랑은 못하지만 필리아 사랑은 하느냐?”라고 베드로의 입장을 받아들이시고는 물으셨습니다.

한국어로는 알 수 없는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에서 사용된 단어들로 인해 예수님과 베드로의 인식과 베드로의 겸손함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한계를 알고 겸손하게 예수님의 질문에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를 띠고 네가 가고 싶은 곳을 다녔으나 네가 늙어서는 남들이 네 팔을 벌릴 것이고 너를 묶어서 네가 바라지 않는 곳으로 너를 끌고 갈 것이다. (요 21:18)”라고 말씀하시며 베드로가 순교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라고 얘기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약함과 한계를 깨닫고는 주님을 위해 죽는 순교자로 다시 태어났던 것입니다.
옆에 같이 있었던 6명의 다른 제자들과 나중에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다른 제자들도 베드로가 느낀 은혜를 같이 느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실의에 빠져있던 베드로와 제자들이 다시 일어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습니다.

2.3.2  요한의 아들 시몬아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부르실 때 “베드로야”라고 부르지 않고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빌립보의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예레미야나 예언자들 가운데에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께 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시몬 바요나야 너는 복이 있다. 너에게 이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시다.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 16:13-19)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그의 신앙을 고백했을 때 원래 이름이 시몬인 베드로에게 처음으로 반석이라는 뜻을 지닌 베드로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바요나]는 히브리어로 [요한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요나는 요한의 히브리어 발음입니다. 요한은 영어로는 존(John)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숫가에서 아침식사를 마친 후에는 “베드로야”라고 하지 않으시고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부르셨습니다.
베드로가 자신을 3번이나 부정하여 괴로워했다는 것을 아신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약한 인간임을 인정하시고 베드로가 부담을 가질 수 있는 베드로(반석)라 부르지 않고 시몬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베드로를 질책하지 않고 따스하게 다가가셨습니다.

2. 네 어린양 떼를 먹여라와 먹어라.

▣ 어느 교회에서 요한복음 21장으로 성극을 했습니다.

네 어린양 떼를 먹여라라고 해야 하는데 많은 관중들 앞에서 성극을 하던 성도들이 너무 긴장을 해서 네 어린양 떼를 먹어라라고 말해 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을 웃겼습니다.

한국 교회에는 양 떼를 먹는  행위를 하는 교회들이 너무 많아 사회에서 멸시를 받고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하기 위해 무리한 행보를 걷고,  멀쩡한 교회 건물을 부수고 화려한 새 건물을 짓기 위해 교인들에게 헌금을 강요하며, 어려운 이웃을 돕고 선교에 헌금을 쓰기보다는 교회에 헌금을 차곡차곡 모아 두고,  교회의 행사에 더 많은 돈을 쓰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양 떼를 먹는 이러한 행위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는 목자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 교회는 왜 존재할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보내셔서 고난을 당하게 하시고 못난 인간들을 구원하시게 하셨을까요?

물론, 모든 사람은 자신과 하나님과의 일대일 관계에서 바른 관계로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자신의 구원, 그다음에는 이웃을 구원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10 계명은 신약에서 2가지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마 22:36-40)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마 22:37, 신 6:5)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마 22:39, 요일 3:23, 레 19:18)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 13:34)라고 하신 말씀은 이웃 사랑과는 다른 제자들 간의 사랑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요 13:35)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과는 다르나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사랑하는 것이므로 제자들 간의 사랑도 이웃사랑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모든 힘든 자들의 영혼의 구원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서고  이 땅에서 행복한 삶을 살도록 돕고 이끌어야 합니다.

교회 자신과 사회, 국가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미래 세대를 교육하고 길러내야 하며 어려운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등,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야 합니다.

이런 엄중한 책무를 다하지 않는 교회가 이 사회와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이끌 수 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수 있을까요?

▣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단 한 가지만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을 베드로에게 하셨을 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아가페 사랑”을 하느냐고 2번 물으셨다가 마지막에 “필리아 사랑”을 하느냐고 단어를 바꾸어서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 (모든 사람을 상징)는 약한 존재이므로 아가페 사랑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잘 알고 계셨습니다.

“네가 나를 필리아 사랑으로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심은 “나는 너의 약함과 한계를 잘 안다. 그렇지만 그 약함과 한계를 나는 활용하여 성령님께서 너를 강하게 해 주실 것이니 그 약함은 곧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강함이 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거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으로 살아가며,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요일 4:16, 19)라고 우리의 한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사랑하지는 못하고 주시는 사랑에 반응하는 사랑이기는 하지만 그런 사랑임을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니다.

3. 베드로의 말년

3.1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Quo Vadis, Domine?)

쿠오 바디스라는 경구로 유명한 말년의 베드로에 관한 또 다른 일화가 있는데 로마의 기독교 박해가 시작되자 베드로는 신자들의 권유로 탄압을 피해 로마에서 빠져나와 도망가려 했었다.

로마를 벗어나던 중 베드로는 자기와 정반대 방향, 즉 로마로 가는 예수의 환영을 보게 되고 깜짝 놀란 베드로는 예수에게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Quo Vadis, Domine)?”라고 묻는다. 이에 예수가, “십자가에 다시 못 박히러 로마로 간다.(Venio Romam iterum crucifigi.)”라고 대답하자  베드로는 큰 깨달음을 얻고 부끄러움에 통곡하며 목숨에 연연했던 자신의 허물을 뉘우쳤다 하며 결국 스스로 다시 로마로 돌아가서 자수를 하고 역십자에 매달려서 순교하면서 죽음을 맞게 된다. (출처 : 나무위키) 

(주)로마에서 선교사역을 하다가 순교한 베드로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베드로행전에 나온 것입니다.

「베드로 행전」에 따르면, 베드로 사도는 로마에서 금욕생활에 관해서 설교했습니다. 베드로의 가르침에 감명을 받은 수많은 부인들은 남편과 헤어지거나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거부했습니다. 그 결과, 베드로는 로마 집정관이었던 아그리파의 미움을 사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위협을 느낀 베드로는 혼자서 로마를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출처-베드로행전/최원오 신부)

베드로행전에 적힌 내용을 아래에 인용합니다.

『로마 성문을 벗어나자, 베드로는 로마로 들어가시는 주님을 뵈었다. 베드로가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라고 여쭈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히려고 로마로 가는 길이오」 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가 「주님, 십자가에 다시 못박히시겠다는 말씀입니까」라고 여쭈었다. 주님께서 「그렇소, 베드로. 나는 다시 십자가에 못박힐 것이오」라고 대답하셨다. 그제서야 베드로는 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하늘로 다시 오르시는 주님을 뵈었다. 마침내 베드로는 기쁨에 가득 차서 주님을 찬미하면서 로마로 돌아갔다. 왜냐하면 「나는 십자가에 못박힐 것이오」라는 말씀은 베드로에게 일어나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그림 / 안니발레 카라치 1601-1602년 (출처 : 나무위키)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안니발레 카라치 1601-1602년 (출처 : 나무위키)

3.2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린 베드로

가톨릭 교회의 전승과 외경인 베드로 행전에 따르면, 베드로는 64년 또는 67년에 사형을 받아 로마에서 십자가형을 선고받아 순교하게 된다. 이때 “나는 그 분과 똑같이 죽을 자격이 없다”면서 거꾸로 매달아 달라고 요청하여 실제로 그렇게 순교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거꾸로 된 십자가는 초대 교황을 상징하는 또 다른 십자가로도 쓰이는데, 근대부터는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창작자들에 의해 이것이 오히려 안티크리스트의 상징으로 쓰이는 경우가 잦다. (출처: 나무위키)

베드로의 십자가형 그림 / 벤투라 살림베니 1604년 (출처 : 나무위키)
베드로의 십자가형, 벤투라 살림베니 1604년 (출처 : 나무위키)

3.3 베드로의 변화

십자가에 거꾸로 달린 베드로와 쿼오바디스 일화도 사실인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를 부인했던 베드로를 사랑으로 대하시며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시며  베드로가 다시 서게 해 주셨으며 베드로는 성령님의 임재로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후에는 이전의 베드로가 아닌 다른 베드로가 됐을 것은 확실합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위대한 순교를 했습니다.

4. 기도

베드로가 부인할 것을 아시고 미리 예언하시고는 새벽닭이 울기 전에 3번이나 부인한 베드로를 따스하게 바라보시고는 갈릴리 호숫가에서 그를 따스하게 바라보시며 일으켜 세워주신 주님이시여!

주님께서 갈릴리 호숫가에서 차려주신 아침 식사를 통해 면목 없던 제자들을 따스하게 보듬어 주셔서 영적으로 회복하게 되었음을 믿습니다.

제가 주님을 필리아 사랑으로 사랑한다고 말씀드리오니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5. 함께 보시면 좋은 글

▣아래글을 같이 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기도(BC702년경)-그는 좋은 왕인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네 어린 양을 먹여라.(요한복음 21장)-헬라어 사랑하다/알다

불의한 청지기 비유 바로 이해하기 (누가복음 16장 1-18)

▣ 일상에서 너무 흔하게 사용되는 ‘사랑한다’는 말에 대해 쓴 아래글도 한 번 읽어봐 주십시오.

▶안타까운 ‘사랑하다’는 표현-너무 흔한 ‘사랑’

Leave a Comment